[편집자 주]
지방자치TV는 그동안 인구 절벽과 지역 소멸이라는 국가적 난제 속에서 지방자치단체가 나아가야 할 실천적 방향을 모색하고자 이종학 부회장의 기고를 연재해 왔다. 당초 10편으로 기획되었던 본 연재는 최근 지방선거 일정과 행정통합 등 지방자치 이슈를 둘러싼 여러 논란과 급변하는 정책 환경을 고려하여 이번 8편을 끝으로 조기에 매듭짓는다. 그간 저자는 청년, 노년, 이주민 등 사람을 지역 경제의 주체로 세우고 기술을 도구로 활용하는 자생적 생존 전략을 일관되게 제시해 왔다. 연재를 마무리하는 이번 최종회에서는 수도권 추종 방식의 한계를 짚어보고, 지역 고유의 자산에 기술을 입힌 로컬택트와 주민 주권의 디지털 아고라를 통한 지방시대의 최종 설계도를 제안한다.
그간 본 기고를 통해 대한민국 지방자치의 생존 로드맵을 치열하게 고민해 왔다. 어느덧 8편에 걸친 연재를 마무리할 시간이다. 지난 시간 동안 우리 지방이 마주한 현실은 녹록지 않았으나, 동시에 우리가 가진 잠재력 또한 확인하는 여정이었다. 이제 그간의 논의를 종합하며 우리 지방자치단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리한다.
■ 지능을 고용하는 AI 시대와 예견된 노동의 종말
미래학자 제레미 리프킨이 예고한 임금 노동 시대의 종말은 생성형 AI라는 강력한 촉매를 만나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왔다. 과거의 자동화가 육체노동을 대신했다면, 이제 AI는 인간의 성역이라 믿었던 지능과 판단을 고용하기 시작했다. 기업은 신입 사원을 채용해 교육하는 비용적 리스크 대신, 즉시 전력화가 가능한 고성능 AI를 선택한다.
이 과정에서 청년들은 경험을 쌓을 기회 자체를 박탈당한 고용 절벽으로 내몰리고 있다. 자본과 데이터가 수도권으로 집중될수록 지방은 인구 절벽과 경제 활력 상실이라는 이중고를 겪으며 고사한다. 기업은 사상 최대의 이익을 거두지만 고용은 줄어드는 고용 없는 성장의 구조화는 공동체성 상실이라는 실존적 위기를 불러왔다. 이제 지방은 중앙정부의 시혜적 예산에 연명하는 관성에서 즉각 탈피해야 한다. 재정 자율성이 완전히 상실되기 전, 지금이 지방의 자생력을 회복할 마지막 골든타임이다.
■ 수도권 추종이라는 성공의 함정을 탈피하라
오늘날 많은 지자체가 범하는 가장 치명적인 오류는 수도권의 성공 모델을 무분별하게 복제하는 것이다. 지역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추진되는 획일적인 산업 단지 조성, 도심형 스카이워크나 출렁다리 설치와 같은 천편일률적인 관광지 개발은 오히려 지방의 자생력을 약화시킨다. 전국 어디에나 있는 대형 카페 거리 조성이나 실효성 없는 스마트시티 흉내 내기, 정체성 없는 지역 축제의 남발은 귀중한 지방 재정을 고갈시키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일 뿐이다.
수도권의 표준화된 성공 방식을 따라 하는 것은 지방을 수도권의 하위 종속 체계로 전락시킬 뿐이다. 수도권과 똑같은 방식으로 경쟁해서는 결코 대도시의 인구 흡입력을 이길 수 없다. 지방의 생존 전략은 수도권과의 차별화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우리 지역만이 가진 고유한 문화 자산과 자연환경, 역사적 특수성을 정교하게 분석하여 대체 불가능한 지역 브랜드를 확립해야 한다. 수도권 지향적인 획일적 추종은 소멸의 가속페달일 뿐이며, 이제는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강력한 생존 무기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 로컬택트 혁명과 고유 자산의 결합
지방 소멸의 위기를 극복할 열쇠는 역설적으로 AI와 초연결 기술에 있다. 어디서든 고도의 지능 서비스를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은 청년들에게 지방에서의 혁신이라는 선택지를 제공한다. 수도권의 높은 비용과 혼잡을 벗어나 지역 고유의 정취를 향유하며 글로벌 시장과 실시간으로 연결되는 로컬택트 환경은 국가 균형 발전의 새로운 동력이다.
여기에 노동시장의 변화로 인해 지방으로 눈을 돌리는 405060 세대의 장년층은 지방의 새로운 핵심 자산이다. 전문 지식과 풍부한 네트워크를 보유한 이들이 지방으로 이주하여 지역 고유 자산에 첨단 기술을 입히는 '경험의 기술화'를 주도해야 한다. 청년의 디지털 감각과 장년층의 노련한 전문성이 지역 현장에서 결합할 때, 지방은 비로소 대도시의 하위 호환이 아닌 독자적 라이프스타일을 공급하는 자생적 거점으로 거듭날 수 있다.
■ 제3섹터와 공공서비스 프로슈머 경제의 안착
시장 노동이 축소된 자리에 돌봄, 교육, 문화 보존 등 인간적 유대와 지역 정체성을 바탕으로 하는 제3섹터를 세워야 한다. 청년과 이주 장년층이 지역의 난제를 해결하는 공공 서비스를 생산하고, 그 급여가 다시 지역 내에서 소비되는 공공서비스 프로슈머 경제 모델이 그 핵심이다.
이를 위해 지방은 스스로 인재를 키워야 한다. 학위보다 실무 능력을 중시하는 교육 모델을 지역 실정과 결합하여, 고향을 떠나지 않고도 최고 수준의 인재로 성장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돈과 사람이 밖으로 새지 않는 로컬 루프를 안착시키는 것이 지자체의 생존을 결정짓는 핵심 과제이다.
■ 디지털 아고라와 참여하는 주권자의 부활
이 모든 전략의 정점은 노동에서 해방된 시민들이 공동체의 주권자로 거듭나는 새로운 소통 체계인 디지털 아고라의 구축에 있다. 수천 년 전 그리스와 로마의 광장 정치가 시민의 자유와 철학을 꽃피웠듯, 이제 우리는 기술적 기반 위에서 주민 참여형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한다.
고도화된 기술은 파편화된 개인을 연결하고, 정책 결정 과정에 누구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한다. 지자체는 주민을 단순한 서비스 수혜자에서 공동체의 운명을 결정하는 주권자로 진화시키는 가교가 되어야 한다. 기술은 단순히 행정 효율을 높이는 도구가 아니라, 인간을 사유하는 시민으로 복원시키는 토대이다.
■ 집단 지성의 주권자가 만드는 지방의 새로운 미래
결국 AI도 사람이 만드는 도구이며, 그 도구가 가져올 미래는 그것을 설계하고 다루는 우리의 사유에 달려 있다. 노동의 종말은 존재의 위기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노동에서 벗어나 진정한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해방의 기회이다.
지방은 더 이상 중앙의 보조금에만 연명하는 변방이 아니다. 기술 혁명의 성과를 공정하게 나누는 제도적 방안을 고민하고, 로컬택트를 통해 지역 고유의 자산을 복원하며, 디지털 아고라를 통해 직접 참여하는 정치 모델을 완성할 때 지방은 비로소 대한민국 행정의 새로운 표준이 된다.
복제된 성공에 매달리지 말고 우리 지역만이 가진 고유한 철학 위에 기술을 입혀야 한다. 그것이 기술 혁명의 파고 속에서 지방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생존 전략이자, 우리가 함께 써 내려가야 할 지방시대의 참된 모습이다. 그동안 연재에 관심을 가져주신 모든 분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